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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석 신부님의 삶과 사랑, 그리고 우리가 이어가야 할 이야기"

by paradise269 2025.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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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슈바이처, 울지 않고 살아내는 사랑을 가르치다”

 
🙆 안녕하세요~
얼마 전 TV프로그램 '셀럽병사의 비밀' 에서 이태석 신부님에 대해 방영하더라구요.. 오래 전 아이들이 보는 책 WHY? 에서 이태석 신부님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고, 그 뒤로 다큐멘터리로도 시청한 적이 있었는데 볼 때 마다 정말 이런 사랑을 실천하시는 분이 세상에 또 계시긴 하겠지만 흔치 않다, 특별하시다, 내 삶이 부끄럽다, 세상에 경종을 울리는 분이다 등등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녹화 중 패널들이 모두 눈물을 보여 잠시 진행이 중단 되었다고도 해요..
선종하신 지 15년이 지나니 방송에 언급이 될 때 잠시 떠올리다 잊고, 또 생각하다 잊고를 반복하면서 우리가 이 분의 삶의 업적과 정신을 잊지 않고 발자취를 늘 마음에 담아 조금이라도 매일 살아가는 나의 일상에 영향을 스스로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기록을 남기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오늘의 People 이야기이태석 신부님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 이태석 신부님, 출처 : 이태석신부기념관 >

🌱 1. 한 사람의 삶이, 한 민족의 희망이 되다

 
이태석 신부님은 1962년 9월 12일, 대한민국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원래 꿈은 의사였습니다. 경남대학교 의예과를 거쳐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의사 자격을 갖췄지만,
그는 "몸만 낫게 하는 의사보다는 마음과 영혼을 살리는 사람"이 되고자
사제의 길을 선택합니다.
1992년, 천주교 사제로 서품된 그는 살레시오회에 입회해 청소년 사목에 헌신하다가
2000년,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Tonz) 지역으로 자원 선교를 떠납니다.
이후 그는 ‘의사, 사제, 선생, 음악가’라는 네 가지 역할로 톤즈에서 8년의 시간을 보냅니다.
 

* " 의사와 환자의 만남은 영혼과 영혼의 만남이다 " *

🏥 2. 의료, 교육, 사랑을 동시에 베풀다

수단은 당시 내전과 빈곤으로 황폐한 나라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남수단 톤즈 지역은 전기도, 물도, 병원도, 학교도 없는 곳이었죠.
그곳에서 이태석 신부님은 스스로 벽돌을 쌓고, 우물을 파고, 병원을 짓고, 학교를 세우고, 악기를 가르쳤습니다.

  • 하루에 수십 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 말라리아에 걸린 아이의 손을 잡아주며
  • 한밤중 맨발로 구호품을 나르던 신부님

그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희망이 무엇인지 보여줬습니다.
 
* 이태석 신부님은 톤즈 사람들과 소통하고 정확한 치료를 위해 3개월간 수단의 언어를 공부하고 톤즈의 청소년들로 '브라스 밴드' 를 결성하기 위해 수십명이 다루는 모든 악기를 직접 독학으로 공부하고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병원과 학교를 짓기 위해 마을 사람들과 힘을 합쳐 모래로 벽돌을 만들고 그 벽돌을 쌓아올려 건물을 세우고, 백신을 보관 해야하는 냉장고와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24시간 불을 밝혀 줄 전기 공급을 위해 건물 지붕에 태양광을 직접 설치하셨다고도 해요. 혼자 힘으로 전기설비 공부까지 하셔서 전기공사를 해내셨다네요.. 도대체 직업이 몇 개인지 셀 수도 없습니다. *

< 톤즈의 아이들과 함께, 출처 : 이태석신부기념관 >

🎻 3. 특별한 일화 – “어른이 울면 아이가 운다”

어느 날, 전쟁 중 다친 병사를 치료하다가 결국 살리지 못했습니다.
주민들은 슬퍼했지만, 신부님은 울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묻습니다.
 
“신부님, 왜 울지 않아요?”
신부님은 대답했습니다.
“어른이 울면 아이도 울기 때문이야.”
 
그는 슬픔을 삼키며 아이들에게 용기를 가르쳤습니다.
“울지 않고, 버티며, 기도하는 삶”을 직접 보여주었습니다.
 

⏳ 4. 마지막까지, ‘준비된 이별’

2008년 한국으로 귀국 후,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병세는 악화됐고, 그의 삶은 2010년 1월 14일, 서울 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에서 끝을 맞이했습니다.
향년 48세.
하지만 그의 죽음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KBS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로 방송되며 전국적인 반향을 일으켰고,
그의 삶은 수많은 이들에게 "삶을 어떻게 사랑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되었습니다.

 

🕊 5. 이태석 신부가 남긴 유산

분야업적
의료 수단 톤즈에 병원 설립, 무상의료 실천
교육 학교 설립 및 후원, 장학금 지급, 수학·음악 교육
문화 브라스밴드 조직, 아이들의 꿈과 자존감을 키움
정신 "희생, 인내, 겸손, 무조건적인 사랑"의 실천
 

그가 직접 가르친 학생 중 다수는 의사·간호사·교사가 되어 다시 톤즈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단순한 의료봉사자가 아닌, 현지 인재를 길러내는 사람이었습니다.

 

🌟 우리가 배울 점과 오늘의 시사점

  • 💬 “좋은 일은 소리 없이 일어난다”
    그는 스스로의 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그러나 깊이 사랑을 남긴 사람이었습니다.
  • 🌍 “어디에 살든, 어떻게 살든 의미를 만들 수 있다”
    톰즈의 척박한 땅에서 그는 하나의 ‘사랑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 📌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일은 거창하지 않다”
    병든 손을 잡아주고, 악기를 함께 연주하며, 하루를 함께 버티는 것.
    그는 그렇게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 마무리하며 –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

 

“내가 가진 것을 조금 나누는 것은 희생이 아니다.

진짜 희생은, 내가 아플 때 누군가를 더 생각하는 것이다.”
– 이태석 신부
 
👉 이태석 신부님은 10남매 중 아홉째로 태어나셨는데 9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님이 홀로 10남매를 키우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지 어렸을 때부터 늘 어머님이 힘드실까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밥도 다 해놓고 집에오면 청소며 어머님을 살갑게 잘 챙기고 도와 주는 아주 착하고 성실하고 공부도 잘하는 그런 아이였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던 사랑의 실천은 평생 본인의 삶 그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쉽사리 본 받고 따라할 수 있는 그런 깊이는 아닌 듯 싶습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지도자라면 이래야 하지 않겠는가?'  7살 때 군대에 끌려가서 전쟁터에 나가 총을 쏘는 것 부터 배우는 그 시대 톤즈 사람들의 메마른 눈에 눈물이 차고도 넘치게 사랑을 실천하셨던 이태석 신부님을 오래도록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 이 글을 읽고 감동받으셨다면,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 또는 후속작 <부활>도 꼭 한 번 시청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 사진 출처 : 이태석신부기념관
- 미리 예약하면 관람도 가능하고 홈페이지에 여러 행사관련 정보도 많으니 관심있으시면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래 링크 남길께요..
 

- 이태석신부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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